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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서재/재테크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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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 1편에서 이어집니다.


5부 금본위제가 무너진 이후의 세상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은 패권을 잡은 뒤, 자신의 시장을 다른 나라에게 개방하고 세계 교역로의 보장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떠안았습니다. 그 이유는 패전국을 우방국으로 키워 소련을 위협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수송로 보장을 통해 미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미국 달러의 가치가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고평가 된 탓에 미국 제품은 팔리지 않고, 미국 사람들 또한 저렴한 수입 상품을 구매하게 만들었습니다.

 

세계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통화의 공급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미국이 달러를 계속 찍어내지만 문제는 미국이 자기 금고에 충분한 금이 없는데도 돈을 찍어내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 새로운 금융질서가 수립되었고 이는 '닉슨 쇼크'라고 불리게 됩니다. 금의 공급과 상관없이 통화 공급이 가능해짐에 따라 강력한 인플레가 왔고, 이후 미국 연준은 20%에 가까운 고금리를 통해 인플레를 잡게 됩니다.

 

금본위제 폐지 이후 금뿐만 아니라 원유 가격도 급등했습니다. 이를 잡은 건 역시나 금리인상이었지만 '수급 불균형'도 한몫했습니다. 1970년 초반, 석유 파동이 일어나고 소비자들은 연비 좋은 소형 자동차에 대한 소비를 늘려 석유 수요가 감소했습니다. 1980년 대에는 석유 생산량이 3배가 증가하여 공급이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약 20년에 걸쳐 저유가 흐름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중앙은행에 맞서지 마라

 

닉슨 쇼크 이후 금본위제의 족쇄에서 풀려난 중앙은행은 3%에서 20%까지 금리를 빠르고 과감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 연준의 정책금리가 상승하면 주식 가격이 급락하고, 반대로 인하되면 주식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6부 일본 경제는 어떻게 무너졌나?

 

닉슨 쇼크 이후, 환율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결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환율은 한 나라 화폐의 상대적인 가치로,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집니다.

 

미국 경상수지 흑자 or 미국 금리 인상  환율 상승(달러 강세) → 국내 수출기업 호재, 외국인 투자자 감소, 국산품 가격 < 수입품 가격
미국 경상수지 적자 or 미국 금리 인하 → 환율 하락(달러 약세) → 국내 수출기업 악재, 외국인 투자자 증가, 국산품 가격 > 수입품 가격

 

플라자 합의(미국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 유도) 이후, 일본의 수출 기업들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에 일본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로 대응했습니다. 그 결과, 수출 경기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내수경기가 좋아졌습니다. 여기에 블랙 먼데이(달러 약세에 대한 우려로 미국 주가가 대폭락 한 날, 이를 계기로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융완화 정책을 시행하기로 약속함)는 일본 자산 시장의 버블을 촉발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금리 인상의 시기를 놓친 일본에선 주식과 부동산에 대규모 버블이 생기게 됩니다.

 

공격적인 금리 인상과 부동산 공급 과잉의 영향으로 1990년부터 일본 자산시장이 무너졌습니다. 자산 가격이 폭락할 때 불황이 출현하는 이유 중 첫 번째는 경제 주체들의 손실에 따른 복구입니다. 상당수의 가계와 기업이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저축하기 시작했고 소비 감소로 인한 경기 침체와 일자리 소멸, 빚을 갚기 위해 집을 매각하며 대규모 집값 폭락 발생하고 악순환이 생겨났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일본이 내수 위주의 경제라는 점입니다. 일본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 단 10%에 불과했고, 소비심리 위축으로 내수경기가 망가지는 순간 기업이 망하게 됩니다.

 

버블이 붕괴될 때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돈을 풀어야 한다

 

지나친 저금리로 인플레가 발생하면 긴축으로 전환하여 해결할 수 있지만, 경기 부양이 너무 늦거나 규모가 약해 디플레이션에 진입하게 되면 경제를 다시 정상 수준으로 되돌릴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상황에서는 금리를 아무리 낮춰봐야 실질금리가 더 떨어지지 않아 통화정책이 무력화되기 때문입니다.

 

 

7부 1997년 우리나라는 왜?

 

저개발 국가의 산업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낮은 임금, 불평등한 토지 소유 분포, 저학력이 있습니다. 이에 모두 해당되던 우리나라가 산업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 군정이 추진한 토지개혁에 있습니다. 미 군정은 우리나라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농민에게 토지를 매각하고 소작료를 낮췄습니다. 토지개혁은 농업 생산성 향상과 함께 경제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여기에 정부의 제조업 육성 프로젝트를 통해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이 성공하게 됩니다.

 

저자는 1997년 외환위기는 금융시장을 개방하면서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했던 정부의 실수로 인해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수출제품 가격이 갑자기 폭락해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 때, 이로 인해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면 이 나라에 투자했던 돈들이 해외로 대거 유출될 것입니다. 경상수지 및 자본수지가 함께 악화되니 외환 공급이 크게 줄고, 환율은 상승합니다. 이때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었기에, 당국은 보유하고 있는 외환을 시장에 내다 팔고 자국의 통화를 거두어들여 통화공급이 감소하게 되고, 결국 불황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금융 자유화입니다. 정부과 환율과 금리를 결정했던 전과 달리,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이를 결정하는 자율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중앙은행의 금리 변화는 경제에 즉각적인 영향을 끼쳐 경제성장률의 진폭이 예전보다 훨씬 완만해졌습니다. 또한 금리자유화로 인해 경쟁력이 높은 기업에게는 낮은 금리로, 경쟁력이 약한 부실한 기업에게는 높은 금리를 부과하게 되면서 과잉 투자의 위험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였지만, 내수경기는 악화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내 총생산(GDP)의 구성에 대해 알아봅시다.

 

GDP = 소비 + 투자 + 수출 - 수입
저축(GDP - 소비) = 투자 + 경상수지(수출 - 수입)
저축 - 투자 = 경상수지

 

즉, 경상수지 흑자는 저축이 투자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외환위기 이후 가계와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져서입니다. 이렇듯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수 비중이 높은 기업의 경영 악화를 의미하고, 이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건전 재정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저자는 만성적인 경상수지 흑자에서 확인되듯, 가계 저축이 과다하고 기업 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정부마저 긴축적인 재정정책을 펼치는 게 타당한 일인지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